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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피부 질환에 있어서 낫는 것과 감추는 것치료실에서 하고 싶은 말들 2022. 12. 29. 18:09
블로그의 첫 글입니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지도 어려워서 첫 글을 쓰는 것은 더욱 막막해집니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주로 저의 전공, 피부질환을 보면서 느끼고 환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글을 쓰려고 합니다. 특히 공돌이 엔지니어 출신인 제가 피부질환을 보는 한의사가 되면서 느꼈던 인식의 변화부터 출발하겠습니다. 그중에서 피부 질환을 보는 데 있어서 '낫는 것'과 '감추는 것'의 관점의 차이를 말하고 싶습니다.
엔지니어 관점에서의 의학
공대 출신, 대기업 연구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저는 항상 베이스가 엔지니어라고 생각합니다. 엔지니어는 '못 만드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만든 것을 '모르는 것'은 없습니다. 만들어진 것에 문제가 생기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 있지만 그 문제를 대부분 고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 디버깅도, 자동차 수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사람이 고장나는 것도 다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그렇게 세세하게 쳐다봤는데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고장 난 자동차 뚝딱뚝딱 고치듯이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질환이 생겼을 때 쓰는 약 역시 '고치는 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염증'으로 표현되는 질환
환자들이 피부질환이 생기거나 근골격계가 아프면 '선생님 염증이 있는거죠? 염증이 있다고 하던데요'라고 말합니다. 염증이라는 것 자체가 원인이 되는 것이니까 이놈만 잡으면 낫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사실 염증은 원인이라기보다는 현상에 가깝습니다. 즉 감염 손상 등에 의해서 방어면역작용으로 감염원을 처리하고 손상된 부위를 일부 파괴 후 재건하는 모습이라고 보면 됩니다. 흔한 비유 중 화재현장에 소방차 경찰차 피해자 불길 불탄 잔해가 정신없는 모습을 생각하면 됩니다. 염증이 있다는 말은 '왜 불이 났나요?'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다만 '불이 나서 정신없이 열심히 끄
려고 노력하고 있네요'만 말하고 있습니다.
'낫는 것'과 '감추는 것'
염증이 잡는다는 것은 염증이 생기는 원인을 해결했다는 의미보다는 염증 현상을 안 일어나게 하는 것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도 당장의 통증, 가려움과 같은 불편함을 낮춰주는 현상 정리를 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염증을 '감추는 것'이 치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현상을 억제하는 힘이 줄어들면 다시 그 현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방어 재건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염증을 생기게 만든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해결해야만 단지 한 번의 염증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원인을 해결하는 것을 '낫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나 피부질환을 오래 않고 계시는 분들은 '낫는 것'과 '감추는 것'을 혼동하고 계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부과에서 약을 받아서 열심히 발랐을 때는 많이 나았는데 안 바르니까 다시 심해져요"라고 하시면서 저한테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감추는 약'을 발라서 안 보이게끔만 한 것이지 피부'염증'을 낫고자 그 원인을 해결하는 노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염증이 계속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 원인을 다 알 수 있냐구요? 공학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 산물이 아닌 사람과 환경과의 복잡하고 다양한 관계의 결과물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해결하고자 노력이 꼭 병행되어야만 계속되는 염증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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